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수(이문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201056
  • 전몰일자 : 19500704

공훈사항

이문수 이등상사는 1927년 2월 20일에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봉안리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5월 28일,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제2연대는 12월 28일부터 1949년 5월 17일까지 제주4·3사건 진압작전임무를 수행했고,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창설된 수도경비사로 예속되었다. 그리고 동년 8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적의 도발을 억제했다. 이후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였고, 이곳에서 제8연대로부터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이문수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치밀한 전쟁 준비를 마친 북한군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경계진지를 무력화한 후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이문수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곧바로 전방방어진지에 투입되어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최대한 적의 진출을 지연하고자 했다. 연대 장병들은 치열한 전투로 적의 침공을 저지했으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압박을 가해오는 적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연대 장병들은 경계지역전투(음양리, 막장골, 어론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57mm 대전차포를 운용하고, 대전차포가 없으면 특공조를 운용했다. 이처럼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저지했다.
이문수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초기전투부터 불사조처럼 용감하게 싸웠으나, 7월 4일 남한강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수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면-32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ㄱ-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