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수(李文秀)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310

공훈사항

이문수 순경은 1923년 1월 26일 부산시 금정구 부곡동에서 경남 양산군 원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울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울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울산경찰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요 보급로·시설 경비, 철도경비를 하는 한편 해안경계태세를 강화했다.
7월 6일부터 이 순경이 포함된 720명의 경남·경북경찰이 부산-김천 간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31일부터는 진주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전북·전남경찰, 그리고 이 순경이 소속된 경남경찰은 혼성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군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으로 북한군 제6사단과 대처했다.
경남경찰은 8월 12일부터 8월 말까지 통영과 마산 일대에서 전남·전북경찰과 함께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하였다. 9월 1일 북한군이 마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자 미 제25사단과 경찰부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마산과 함안에서 적을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의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에 따라 울산경찰은 이 기간에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했다.
이 순경은 이 작전이 끝난 후 울산으로 복귀하여 치안유지, 피난민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하다가 태전사(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 부대에 편성되어 제1기(1951.10.02.-12.14), 제2기(1951.12.16.-1952.01.04.), 제3기(1952.01.04.-01.31.)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2년 3월 10일 야간에 울산경찰서가 수 명의 공비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수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ㄱ-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