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세(李文世)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12472
  • 전몰일자 : 19501117

공훈사항

이문세 하사는 경상북도 달성군 동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문세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제6사단은 신녕 북방의 국통산∼324고지를 잇는 고지군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단은 신령 북쪽의 화산 일대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호응하여 9월 16일부로 낙동강 선에서 총반격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유엔군의 작전지침에 의거 9월 16일 8시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당시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른 채, 조림산 일대에서 완강히 저항하다가 9월 22일 야간에 북쪽으로 소리 없이 퇴각했다.
이에 제6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의흥-함창-보은-괴산-충주-원주 방향으로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사단 장병들은 10월 1일에 횡성-홍천 방향으로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그리고 10월 4일에 춘천을 점령한 후 모진교까지 진출하고, 10월 5일에는 38도선을 돌파했다.
이문세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계속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19일에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했고, 이곳에서 연대는 부대정비를 한 후 10월 21일에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다시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벽동(온정리 서북방 75㎞)을 향해 진격하던 중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에 이문세 하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소부대 단위로 분산하여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공격부대에 청천강 이남의 개천으로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10월 30일 산악 지역을 통해 철수하면서 측방으로부터 중공군의 공격을 받으며 개천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국군 제2군단의 예비로 부대정비를 한 후 11월 14일에 영원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17일에 집결지 주변 일대에 대한 수색작전 중 중공군 정찰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ㅎ-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