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성(이문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23083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문성 하사는 1925년 9월 24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11월 29일에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할 당시,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이에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 공세)에 밀려 D방어선(평택-안성-장호원-원주-삼척을 잇는 선)과 E방어선(일명 황우선, 영월-삼척을 잇는 선)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중순에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중공군 1951년 5월 공세 당시,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8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성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ㅊ-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