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섭(李文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61945
  • 전몰일자 : 19521008

공훈사항

이문섭 일등중사는 1931년 5월 5일 서울시 동대문구 면목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섭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송계리-삼척선으로 철수하였다. 5일간이나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대관령-횡계리-구산리 간의 도로가 차단되어 공격이 지연되었고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경강국도를 중심으로 현리-양양을 연하는 카이로선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그와 연대 장병들은 1952년 5월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다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순간적으로 서로 총알이 빗발치듯 오가는 교전에서 중공군의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이어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다. 이와 같이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기갑연대 제5중대가 배치된 지형능선과 제6중대가 배치된 575고지에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 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해 왔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이문섭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9월 20일까지 수차에 걸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이문섭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나, 8일 575고지를 상실한 후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언제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던 이문섭 일등중사는 1952년 10월 8일 금성 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섭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9689 육)을 추서하고 유해(11묘역-4판-3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ㅁ-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