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섭(李文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744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이문섭 일병은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고, 북한군의 도발이 빈번하던 1950년 1월 중순, 경기도 의정부의 제7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9연대로 배치되었다.
제9연대는 포천 북방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제2대대가 38도선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연대 본부와 제1, 제3대대는 포천 남쪽 금오리 일대에 주둔하며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3,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공격을 했을 때, 이문섭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금오리 일대에서 전술훈련을 하다가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주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북한군이 순식간에 경계진지를 무너뜨리고 11시경에 보전협동공격으로 포천을 점령하자, 장병들은 이날 오후 2시경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했다.
이문섭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연대와 통신마저 두절된 상황에서 중대 및 소대별로 분산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받고 오후 4시경에 태릉으로 집결했다. 이어 육사교장 지휘 하에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하여 퇴계원 방향을 방어하다가 28일 아침 한강교가 폭파될 때 망우리고개-용마산-광나루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제9연대가 해체될 때, 그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제1연대 장병들은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진천-청주 축선에서 7월 28일까지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국군 제8사단의 안동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긴급히 안동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적 제12사단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후퇴했다. 이후 북한군 제12사단이 8월 9일 기계-안강 지역을 점령하자, 제1연대는 12일에 안강 지역으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히 저항했다. 이 부근에 145고지와 221고지, 그리고 호명산은 경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피아간에 중요한 지형이라 8월 한 달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 벌어졌다. 이후 9월 2일에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강력히 저항했으나, 9월 4일에 형산강 이남의 호명리 선으로 철수했다. 그곳에서 9월 12일까지 진지를 사수함으로써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9월 14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8판-4면-2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ㅊ-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