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섭(李文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379148
  • 전몰일자 : 19530616

공훈사항

이문섭 이등상사는 1927년 1월 23일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상사는 1951년 1월 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상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정비 중이었고 제3사단은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방어 중이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제3사단은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했다. 그리고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어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1953년 3월까지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 689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 서전으로, 1953년 4월 2일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중공군 제2단계 하계 공세(6월 공세) 때 적의 공격이 제5사단에 집중되자, 연대는 6월 11일부로 제5사단에 배속되어 임남 일대의 883고지에서 중공군 제181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결국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돌격하다 적탄에 맞아 6월 1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섭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23판-3면-2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ㅎ-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