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석(李文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29753
  • 전몰일자 : 19521117

공훈사항

이문석 일등중사는 경상남도 고성군 일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12월 하순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조교와 교관으로 신병훈련에 전념하다 1952년 4월 28일 제37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자 이 부대의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한편, 한국 정부는 1952년 초부터 휴전 후의 국방을 고려하여 육군의 규모를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마련하여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국군의 증강을 지지했고, 1952년 5월 유엔군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클라크 대장이 이를 적극 추진함에 따라 구체화되어 실현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37연대는 독립연대로서 전선을 맡은 미 제9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 무렵 전선 상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공산군 측이나 유엔군 측 모두 대규모 공격작전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진지나 주저항선 상의 주요 지점에 대한 소규모 전투만이 진행되었다. 제37연대가 소속된 미 제9군단은 철원, 김화 축선을 담당했고, 백마고지, 저격능선, 삼각고지 등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제37연대는 군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매복작전,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적은 정찰대를 투입하여 군단 후방지역에서 첩보수집, 습격·파괴활동과 교란작전 등을 전개했다.
이후 연대는 강원도 양양으로 복귀하여 제12사단 창설을 위해 경장비연대에서 중장비연대로의 개편을 위한 장비 보강과 교육훈련을 강화했다. 북한군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수시로 습격을 가해왔다. 1952년 11월 14일 북한군이 연대를 습격했고, 이때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1월 17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석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4-ㅅ-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