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석(李文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1357
  • 전몰일자 : 19510522

공훈사항

이문석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신동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석 일병은 원산공격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10월 10일 시가 중심부 서측방에 우뚝 솟아 있는 여왕산을 최초의 공격목표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공격작전의 진행 과정에서 원산 시내에서의 전투지경선이 불투명하여 원산시가에서 두 번씩이나 다른 사단과 서로 교차진출하게 되거나 전투지경선을 침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한 가운데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다음날 11일 새벽 공격을 재개하여 북한군의 야포 박격포, 소화기 사격을 받으면서 시 중심가를 뚫고 저녁때에는 원산역 북쪽의 적전천 제방까지 진출하였으며, 이 일병과 장병들은 시내에 남아 있는 잔적을 소탕하는 한편 비행장 경비를 강화하였다. 그가 삼척으로 철수해 강릉 부근에 배치되었을 때인 1950년 12월 31일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문석 일병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그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이후 5월 7일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시작되어 설악산 부근의 연대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는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석 일병은 1951년 5월 22일 설악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ㄲ-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