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상(이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1977
  • 전몰일자 : 19510117

공훈사항

이문상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하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중순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제3사단도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봉화군 춘양으로 이동하여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에서 침투한 적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적이 설치한 장애물을 제거하다 적탄에 맞아 1월 1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0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ㅍ-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