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봉(李文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388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문봉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봉 일병은 평양진격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0월 9일에 고랑포를 출발하여 접적 없이 동북쪽으로 진격, 38도선 북쪽에 위치한 마전리를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4일 오전 10시 30분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북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운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목표인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사단은 11월 20일 태천-구성-삭주-신의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24일에는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적은 사단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렙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적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날 저녁부터 중공군의 저항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완강하여졌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일부 부대가 반격을 개시함으로써 쌍방은 태천을 두고 격돌하였다.
이어 적은 27일을 전후하여 대령강 동쪽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선 이문봉 일병과 연대병력은 태천 동남쪽의 학봉동, 기우산, 토라산 일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격전을 펼쳤으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공격을 기도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와 연대병력은 양지동, 둔전동 일대에서 돌파를 기도하던 중공군을 격퇴한 후 용산동 일대로 철수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문봉 일병은 1950년 12월 1일 묘향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봉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ㄹ-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