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봉(李文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101608
  • 전몰일자 : 19500706

공훈사항

이문봉 이등상사는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11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군단에 배치되었다.
이문봉 이등상사가 38선 일대 주요 시설경계에 임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38도선에 배치된 장병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지만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서울이 함락되기 직전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한강을 연한 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육군본부를 수원농업시험장으로 이동 개설한 후 김홍일 소장을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한강선 방어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문봉 이등상사와 일부 병력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6월 28일 아침 한강을 건너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량을 이용할 수 없어 야포, 차량, 박격포 등 중장비를 이동 시키지 못하였다. 철수 병력은 겨우 소총만을 휴대한 채 뗏목이나 나룻배를 타고 소부대 단위 또는 개인별로 도하하였다. 북한군의 도하공격 이틀째인 7월 1일에는 영등포 대안의 북한군 제4사단이 미명부터 본격적인 도하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들은 아직 유일하게 완파되지 않은 경부선 철교를 확보할 목적으로 먼저 아군복장을 한 편의대 1개 소대를 노량진 방면으로 침투시켜 아군을 교란하면서 예비대인 제5연대를 선두로 마포와 하중리 나루터에서 대규모 도하공격을 개시하였다. 여의도에 거점을 확보한 북한군이 이 이등상사이 있던 영등포 지역의 진지로 육박하여 한때 아군의 방어선이 돌파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참호 속의 이 이등상사와 병사들은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진지에 접근하는 북한군에게 소화기와 수류탄을 집중함으로써 북한군의 돌파기도를 분쇄하였다.
이 이등상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봉 이등상사는 1950년 7월 6일 용인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봉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77-ㅁ-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