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백(이문백)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8381
  • 전몰일자 : 19510710

공훈사항

이문백 소위는 경상남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초순경, 경상남도 동래에 설치된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 과정을 수료한 후 12월 하순경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5사단 공병대로 전속되었다.
이문백 소위가 부대에 전속될 무렵 전황은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북한군 및 중공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 편성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하였으며,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이문백 소위는 수색 소대원들을 지휘통제하며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 문막을 거쳐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했다.
그 후 사단은 중공군 2월 공세시 횡성 일대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적의 공격을 안흥 일대에서 저지해냈다. 3월 3일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에 밀려 다시 소양강 남단으로 철수했다.
5월 16일부터 5월 19일까지 중공군 5월 공세 때 제12군 및 제27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사단은 풍암리까지 조직적으로 격전과 철수를 반복하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했고,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점령했다.
제5사단은 7월 말까지 이 선상의 진지강화와 재편성을 실시하면서 적과 대치 중에 있었다. 이문백 소위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新캔자스선 상의 전방연대 진지 보강을 지원 중 7월 10일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백 소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3묘역-판-14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ㅅ-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