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동(李文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500563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이문동 하사는 1921년 3월 7일 경상남도 마산시 여산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1949년 6월 20일 국본 일반명령 제6호에 의거 기갑연대, 제2연대, 제17연대를 기간으로 서울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49년 8월 10일 제17연대를 배속 해제와 동시에 제18연대를 배속시켰고, 11월 15일 기갑연대를 육본 직할로 배속 전환하였다.
당시 기갑연대는 M8장갑차 27대를 장비한 장갑수색대대, 마필 300대가 편성된 기병수색대대, 도보수색대대 등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육군직할 독립부대로 운용되고 있었다. 이문동 하사가 기갑연대에서 전문분야의 숙달을 위해 정진하고 있을 무렵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38도선에 배치된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문동 하사와 연대병력은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황급하게 김포반도로 투입되었다. 옹진반도에 배치된 국군 제17연대가 6월 25일 아침에 붕괴되자 육군본부는 황급히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독립기갑연대 등 가용부대를 끌어모아 김포반도에 배치하였다. 이 하사가 배치된 김포반도를 공격하는 북한군을 막아내기에 기갑연대의 일부 병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부대 장병들은 6월 28일 김포공항이 북한군에게 점령된 후 오류동 부근으로 철수해 6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북한군의 영등포 진입을 저지한 후 지연전을 반복하며 계속 철수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6일 진천지구 전투, 7월 13일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14~16일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그러던 중 이문동 하사는 1950년 7월 19일 청송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7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ㅈ-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