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도(이문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567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문도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경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까지 경북지역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했고, 27일 이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는 김포로 출동하여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그날 저녁 무렵 김포읍에 집결한 대대는 김포지구사의 명령에 따라 김포 서북방의 운유산 동쪽 72고지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여 6월 28일까지 북한군 제6사단(-)의 남진을 지연하다 전투력의 열세로 소사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30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제3사단에 편성되어, 7월 1일 금곡리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일전을 벌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7월 4일 제1사단에 배속되어 풍덕천 일대의 188고지에서 적 제3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수원, 천안 일대로 분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대는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동해안 축선의 위협이 증가됨에 따라 연대는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57호(7.20. 발령)에 의거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23일 대구로 이동하여 재편성을 했다. 7월 24일 영덕 남방의 강구에 도착한 연대는 26일 제3사단의 역습명령에 따라 강구 북방의 181고지와 207고지를 탈취하고, 곧이어 30일 제23연대가 탈취당한 영덕을 다시 탈환했다. 이후 8월 7일까지 연대는 이 일대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을 계속했으나, 8월 8일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강구 남쪽으로 철수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가 포항을 점령하면서 제3사단은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었고, 사단과 연대는 장사동 일대로 방어선을 축소하여 적과 16일까지 격전을 벌였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고립된 가운데서도 투혼을 발휘하여 진지를 지켜냈다. 이 일병은 이 전투에서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2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2면-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사자 명비(112-ㅂ-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