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달(李文達)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15245
  • 전몰일자 : 19510816

공훈사항

이문달 이병은 1930년 1월 10일에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상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1951년 4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동년 5월 25일에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달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당시 제2사단은 군단계획에 따라 적의 주력부대와 예비대가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섬멸하기 위하여 최대한 신속히 반격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5월 20일을 기해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일제히 공격했다. 일명 가평-화천 진격전을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시작된 이후 계속된 수세에서 벗어나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공격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이문달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14일에 적근산(1073고지)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연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령부의 작전지침으로 8월 2일에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하여 탈환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피아간의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날 이문달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8월 16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달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297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ㄴ-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