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달(李文達)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904794
  • 전몰일자 : 19511102

공훈사항

이문달 하사는 1932년 11월 28일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이 하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17일 수도사단에 입대하여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수도사단은 경상북도 기계 축선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23일부터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강원도 간성-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후 원산(10일), 함흥(17일)을 전령한 연대는 장진호, 부전호 방향으로 진격하여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하여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6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강원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3사단이 탈취한 전진기지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역습을 실시했으나, 사단은 이를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하사는 11월 2일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달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5825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ㅌ-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