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길(李文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703449
  • 전몰일자 : 19500628

공훈사항

이문길 일병은 1929년 9월 1일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9일 입대하여 육군포병연대에서 포병 주특기교육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예속된 제6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년 11월 20일 제2, 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동년 12월 15일 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다.
육군포병연대 예하 제6포병대대는 1949년 7월 28일 제1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으며 제1사단포병대로 개칭되었다. 포병대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작전에서 요청 시 포병사격 지원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이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했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에 비해 월등히 우세했다.
이문길 일병이 소속된 포병대는 임진강 도하 저지 작전 시 포병사격을 끊임없이 지원했으나 북한군의 대규모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제1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했으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사단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했다. 이어 6월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지고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사단은 6월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선까지 철수했고, 6월 28일 새벽에 북한군이 서울의 미아리로 진입함에 따라 행주나루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이문길 일병은 한강을 도하하기 위해 포반원과 함께 포병사격을 지원하면서 행주나루로 부대이동 중 6월 28일 적 침투부대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5판-1면-1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ㅇ-02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