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기(李文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901812
  • 전몰일자 : 19510428

공훈사항

이문기 이등상사는 1929년 6월 25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3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문기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1950년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시작하게 되자 함경도 지방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만약 그들이 어떤 적절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38도선에 이르기 전에 공산군의 진격이 피난민의 대열을 앞지를 것이 자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2월 9일을 전후하여 성진, 함흥, 흥남, 원산 등의 항구에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이문기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수송수단이 허용하는 대로 가능한 많은 피난민을 후송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이어 길주에서 북한군이 반격해 오고 있었다. 이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치열한 교전을 벌여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이문기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그와 연대는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문기 이등상사는 1951년 4월 28일 남기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기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04-ㅍ-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