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규(이문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1236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이문규 일병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0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제8사단은 적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었는데, 이때 청천강으로 철수하라는 요청에 제8사단은 영원방면까지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3일 맹산에 전방지휘소를 개설하고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에 돌입했다.
제8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병력이 계속해서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하여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해 토산에 이르렀다. 이어서 제8사단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520고지의 점령을 위해 연천에 집결해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에 비해 열세한 화력과 적군의 우회 침입 작전에 직면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 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장병들과 분투했지만, 중공군의 공세는 압도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1년 1월 4일 강원도 횡성으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도중 적의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ㄹ-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