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규(李文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6868
  • 전몰일자 : 19500625(제1훈련소 창설 이전이므로 오류로 추정하여 1950-08-25로 수정하여 작

공훈사항

이문규 일병은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1일 제1여단 제1연대에 입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연대는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경계진지와 소요산 일대 주방어선에서 적과 사투를 벌였으나, 절대적인 전투력의 열세로 첫날 방어진지가 붕괴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일병은 8월 초순 부상에서 회복하여 대구에 있는 육군 제1훈련소 조교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그 후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이 일병이 제1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8월 공세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8월 중순 전선이 대구 북방에 형성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8월 25일 대구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일병은 적들과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7판-6면-0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ㅍ-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