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국(李文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724
  • 전몰일자 : 19511002

공훈사항

이문국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1년 6월경에 입대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휴전회담 직후 유엔군 방어선의 취약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제한목표 공격’의 일환으로 노전평전투를 계획했다. 노전평 일대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과 고성군 수동면 지역으로 태백산맥의 서쪽에 형성된 서화계곡을 중심으로 한 험준한 산악지대였다. 이에 제8사단은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 제2군단 제2·제13사단 및 제3군단 제15·제45사단과 3차례에 걸쳐 고지쟁탈전을 진행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격렬히 저항하는 북한군 제2사단과 제13사단의 전초부대를 격퇴했다. 공격 첫날 전차대대가 562고지를 점령함에 이어, 둘째 날 나머지 목표들을 장악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역습도 만만치 않아 한때 785고지와 1010고지가 북한군에게 피탈되었지만 제8사단이 고지 재탈환에 나서 785고지와 1010고지를 재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제8사단은 북한군 전초진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제1차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제8사단은 이 전투로 북한강 동측의 고지 방어선과 주요거점을 확보하고 동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할 수 있었다.
노전평전투가 마무리 되었을 당시 미군 제2사단은 양구군 단장의 능선에 전선이 고착되어 있었는데, 전황을 진전하기 위해서는 서측방의 감제고지인 백석산의 점령이 요구되었다. 이에 국군 제7사단이 9월 22일부터 백석산을 공격했으나 점령에 실패하였다.
그 후 제8사단 장병들은 1951년 9월 말 미 해병대 제1사단에게 노전평 지역을 인계하고 백석산으로 이동해 백석산 탈환작전에 참가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1년 9월 30일 공격을 개시하여 이틀 만에 백석산을 점령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일병은 백석산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큰 부상을 입고 1951년 10월 2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국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4판-2면-1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ㅂ-09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