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희(이무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30381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무희 일등중사는 1929년 1월 9일에 충청북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29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무희 일등중사가 전입했던 1951년 2월 초순, 제6사단은 문막 북방의 판대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제6사단은 38도선 상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고, 이곳에서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향해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전투력의 열세로 1951년 1월 1일 오후 8시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이동했다. 이후 1월 7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가 2월 초에 문막 북방의 판대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판대리 일대에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2월 21일부터 실시된 유엔군의 반격작전(일명 킬러작전)에 참가하여 횡성 일대를 점령했다. 이날 이무희 일등중사가 소속된 대대는 횡성을 공격하던 중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고, 그는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얼마 후 완쾌되어 복귀할 때인 4월 중순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전속되어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무희 일등중사가 소속된 육군 제2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집중하면서 주변 지역에 나타난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수시로 참가하였다. 이에 훈련소는 조교들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대비했다. 당시 부산지역에는 정부 주요기관과 군 시설이 많아 적 게릴라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19일에 부산 인근의 구포 일대에 적 게릴라(북한군 패잔병)들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가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즉각 출동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들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희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ㄴ-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