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현(李武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5858
  • 전몰일자 : 19501105

공훈사항

이무현 일병은 1926년 10월 25일에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공세를 힘겹게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했다. 이후 이무현 일병은 경기도 김포에 있는 공병학교에서 공병 주특기교육을 이수한 후 제1공병단으로 배치되었다.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고, 6·25전쟁 발발 당시는 제1건설공병대대, 제9야전공병대대, 창고중대, 제1정비중대로 편성되었다. 이무현 일병은 공병단에 배치되어 공병 확장과 교육, 그리고 진지구축과 장애물 설치작업에 전념했다.
제1공병단은 1950년 8월경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되어 육본직할 부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낙동강방어선 전투 상황이 워낙 긴급했기 때문에 공병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경상북도 영천일대 보현산 지구 전투에서 북한군 제766부대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곧 육군본부로 복귀하여 전방 사단과 군단의 공병 능력을 초과하는 교량·도로 건설 및 보수와 비행장 건설 및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과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하면서 공병단의 책임지역은 38도선 이북까지 확대되었고, 방어작전 때 유엔군 공군이 파괴한 교량과 철교 보수 수요도 늘어났다. 공병단 장병들은 동분서주하며 임무수행에 매진했다.
중공군의 참전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작전을 펼침에 따라 이무현 일병이 소속된 공병단도 함께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철수로 유지・보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전투부대의 원활한 철수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철수작전 시 이무현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임무를 완수하는데 전념함으로써 군의 기동로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50년 11월 5일 주철수로 보수작업 중에 중공군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1판-3면-1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3-ㄷ-1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