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진(李茂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727
  • 전몰일자 : 19510915

공훈사항

이무진 일병은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중공군의 신정 공세에 밀려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으로 후퇴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도 후퇴하여 영월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백적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7월 10일 최초로 휴전협상이 열렸고, 이후 전투양상은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전으로 전개되었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554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9월 2일 목표를 확보 후, 계속된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9월 1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3판-7면-01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ㅍ-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