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중(李茂重)

  • 군별 : 육군
  • 계급 : 대령
  • 군번 : 10337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무중 대령은 부산시 중구 부평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그는 1946년 6월 중순 육사 제2기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6년 12월 14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제1사단 제11연대 중대장으로 보직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시에는 제1사단 제11연대 제3대대장을 담당했다.
이 대령이 제1사단에 배치되어 대대장으로 부임할 때 전선의 상황은 험난하였다. 당시 사단은 철수와 지연전을 반복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1950년 8월에 접어들어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그때부터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무중 대령의 지휘 아래 연대병력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연대병력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적 제2, 제3, 제4, 제7, 제9사단 등 패잔병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돌파 및 소탕작전 기간 동안 적 사살 4,543명, 포로 5,211명, 각종 포 36문 등의 수훈을 세웠다. 이 대령이 지휘하는 연대병력은 계속해서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한 다음 청주로 집결하여 부대정비와 훈련을 실시하는 등 차후 작전을 위해 준비를 하였다.
이 대령은 위기에 놓인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두지휘하며 전투에 임했던 이무중 대령은 11연대 3대대장으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며 조치원에서 괴산으로 진격하던 도중 기습을 받고 1950년 10월 1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는 전사 당시에는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중 대령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3432 국)을 추서하고 유해(33묘역-판-8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ㅁ-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