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일(李茂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3688
  • 전몰일자 : 19530531

공훈사항

이무일 하사는 1931년 10월 24일에 충청북도 청원군(現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2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무일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제27연대는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고성 북쪽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예하 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그 이후, 제5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철원군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인 일명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이무일 하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좌측 전방 949고지 일대를 방어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 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옴으로써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6월 10일 하계공세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초진지와 주진지 보강을 계속 실시했다. 이무일 하사는 분대원을 통제하며 주진지인 949고지를 보강 중 5월 31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일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69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5-ㅋ-05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