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윤(李珷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01944
  • 전몰일자 : 19500905

공훈사항

이무윤 일병은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소백산맥 선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7월 15일 제2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이 소백산맥 선 상에서 지연전을 하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동해안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3사단은 영덕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 제5사단 및 제766부대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연대는 영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연대는 29일 제22연대와 함께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고,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하고 3일 활인산-매정동 선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8월 6일 적의 야습을 받아 영덕을 탈취당하고, 연대는 오십천 남방 고지를 점령하여 8월 9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가 포항을 점령하면서 제3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자, 사단은 장사동 일대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 17일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병력을 재보충받은 연대는 8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포항 북방의 우현동 일대까지 진출했다. 9월 1일 제3사단은 일제히 반격을 했고, 북한군 제5사단도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93고지 일대에서 16회의 공방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일련의 공방전에서 연대 장병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적과 싸웠다. 이 일병은 신병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9월 5일 전투에서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4-ㅋ-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