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용(李武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4764
  • 전몰일자 : 19500830

공훈사항

이무용 일병은 1926년 12월 7일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던 1950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카투사(KATUSA, 한국에 파병된 미군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한국군) 요원으로 선발되어 제2군단에 배치되었다.
제2군단은 1950년 7월 15일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에서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제1사단과 제6사단, 제8사단을 배속하였고, 초대 군단장은 김백일 준장이었으며, 7월 20일 유재흥 준장이 2대 군단장으로 부임하였다.
군단은 창설 직후 충주 방면으로부터 문경군 유곡지역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예하 제6사단으로, 풍기 방면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2개 사단에 대해서는 예하 제8사단으로 하여금 지연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무용 일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2군단은 8월 1일 왜관 북동쪽의 강변을 따라 도하철수를 개시하였다. 함창에서 적을 저지하고 있던 제2군단 예하 제1사단은 적과 접촉을 끊고 당시 상주의 미 제25사단의 엄호 아래 낙동리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다음날 제12연대의 엄호 아래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이후 군단은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정면을 담당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한편, 육군본부는 미 제25사단의 마산 이동의 결과 군단이 담당한 방어선이 너무 넓고 연결되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8월 11일부터 전선을 축소 조정하여 왜관-포남동-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방어선상으로 이동하여 적을 계속 방어하게 하였다.
이무용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다. 군단 사령부 및 예하 사단들이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던 1950년 8월 30일 이무용 일병은 수암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1판-4면-0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7-ㅅ-07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