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용(이무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23616
  • 전몰일자 : 19520215

공훈사항

이무용 소위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소위는 1951년 6월경 통역사관으로 육군보병학교에 입대하여 기초적인 군사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3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캔자스선(화천-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가칠봉과 서희령 일대의 진지를 인수했다.
미 제10군단장은 1,052고지와 1,211고지를 탈취하여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전선을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사단은 제22연대를 투입하여 1,052고지를 탈취하도록 했고, 연대는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제23연대가 1,211고지 탈취를 위해 공격작전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13·2사단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전투를 종료했다. 제3사단은 11월 중순 가칠봉 일대 진지를 미 제7사단에 인계하고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어 양구 일대의 파로호 남안에 배치되어 부대정비를 하면서 북상하는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2월 15일 중공군 제203사단 예하 제607연대를 사단의 전초진지인 662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662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제3사단 미 고문장교와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가 적탄에 맞아 2월 15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용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8판-1면-0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ㄷ-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