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영(李武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6997
  • 전몰일자 : 19510726

공훈사항

이무영 일병은 1932년 2월 12일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한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자 조국을 구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1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는 38도선 상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 공격에 투입되어 24일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영월을 점령하려는 적을 맞아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백적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하였으나, 이곳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속사리-하진부리-대관령 일대에서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6월 12일 공격을 재개하여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양구 서북방의 백석산(1,142고지)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발판인 917고지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연대는 757고지, 917고지 일대에서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계속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적탄에 맞아 7월 2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3-ㄴ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