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실(李戊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304472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무실 일등중사는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조국의 안보 확립에 기여 하고자 1948년 5월 하순에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제주4·3사건 진압작전과 옹진반도 은파산·까치산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무실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후 홍천 북방에서 공세적인 전투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키고,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충주-문경 축선에서 7월 말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어 위천 북쪽의 1∼3㎞ 지점인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선, 그리고 신녕 북쪽의 370고지를 잇는 고지군에서 축차적으로 지연하며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맞아 8월과 9월 동안 격퇴하고 반격의 여건을 조성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을 기해 낙동강방어선으로부터 일제히 반격했다. 제6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10월 1일에 횡성-홍천으로 진격하였고, 5일에는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무실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벽동(온정리 서북방 75㎞)을 향해 진격하던 중,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었다. 이에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청천강을 건너 개천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영원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이후 유엔군은 11월 25일에 압록강을 향해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했으나, 이때도 중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사단 장병들은 38도선으로 철수하여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를 점령했다. 이때 제2연대는 예비로 동두천에 집결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맞아 방어진지를 사수하고자 했으나, 적들이 후방으로 침투하여 보급로 및 철수로를 차단함으로써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에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야간에 진지에서 철수하여 의정부를 거쳐 창동으로 이동했다. 이날 그는 창동으로 철수할 때에 적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를 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실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ㅋ-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