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식(이무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48115
  • 전몰일자 : 19501226

공훈사항

이무식 일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現 영천시 금호읍) 덕성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23일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 입대했다. 이무식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美 제8군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부대조정에 의해 제5사단 수색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 및 보고하거나 지휘소를 습격하고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무식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아군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와 같이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게릴라들을 소탕했다. 그 후 사단은 영남 지역의 후방지역작전지역을 제9사단에 인계하고 11월 27일부터 육군본부 통제하에 철의 삼각지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다. 이들 패잔병은 개전초기 낙동강전선에서 낙오된 후 태백산맥을 통해 북으로 도주하여 철의 삼각지대에 집결한 병력이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가평 북쪽의 지암리와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이러한 국군의 후방지역작전으로 수복지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무식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12월 말까지 방어편성을 하고 있었다. 이무식 일병은 12월 26일 분대원과 함께 적진에 침투하여 탄약고를 폭파하던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0면-2185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ㅋ-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