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수(李武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49128
  • 전몰일자 : 19520907

공훈사항

이무수 하사는 1931년 7월 13일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0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선 상황은 1951년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이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산군 측에 압력을 가하고 미래의 휴전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고지쟁탈전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이무수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그 후 이 하사와 장병들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무수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던 중 8월 5일 북한군은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서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9월 6일부터 다시 북한군은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 하사는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무수 하사는 1952년 9월 7일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223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14면-869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ㅊ-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