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수(李武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11962
  • 전몰일자 : 19501110

공훈사항

이무수 이등중사는 1926년 1월 11일 경상북도 대구시 신평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2일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무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이어 9월 15일에는 안강 평야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이전할 준비중에 있었다. 16일 그와 장병들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함포지원 하에 형산강 도하작전을 계획대로 강행하였다. 그러나 대안에 배치된 북한군의 주력이 도하부대에 집중사격을 가하자 견뎌내지 못하여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18일에는 형산강 북안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에게 해・공군이 포격과 폭격을 하는 가운데 사단장의 진두지휘하에 실시된 도하작전을 성공하였다.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형산강 북방의 공격목표를 향하여 진출하던 이무수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20일에 포항을 탈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11월 5일 길주 동남쪽에 있는 552고지에 있던 적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와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즉각 공군 및 포병의 긴급지원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전진해 나갔다. 이어 봉강을 공격 중이었으나 전차로 증강된 대대 규모의 대병력이 역습을 가해 오자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어랑천 남안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무수 이등중사는 1950년 11월 10일 어랑천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투하한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1판-6면-1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ㅎ-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