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선(李武先)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1641
  • 전몰일자 : 19530413

공훈사항

이무선 소령은 1926년 4월 26일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호국간성이 되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교육을 받고, 1948년 10월 12일 특별7기생으로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제5여단으로 전속되었다. 여단는 1949년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되어 6·25전쟁 발발 전까지 책임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은 제15, 20연대가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력의 차이로 인해 1950년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때 이무선 소령은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초순경 회복하여 제5사단 사령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10월 8일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하는 아군의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9월 초부터 시작된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52년 1월 23일부로 제5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으며,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351고지가 피탈되었으나 몇 차례의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에 접어들어 사단은 제2군단 배속으로 화천군 임남면 백암산 동북방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면서, 중공군 하계공세 전까지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무선 소령은 4월 13일 백암산 일대 방어진지에서 사단 작전참모로서 방어 작전계획을 검토 중 적 침투부대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선 소령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1면-17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ㅁ-06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