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생(李武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00157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이무생 일병은 1934년 1월 1일 경상북도 경주군 내동면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병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던 1950년 8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교육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무생 일병은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양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이무생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0월 19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와 연대 장병들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였으며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이무생 일병과 연대병력은 4월 21일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이어 4월 22일 해가 지고 저녁 8시를 전후하여 중공 제64군은 일부 병력으로 임진강 북쪽에 진출한 연대의 퇴로를 차단한 후 포위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장병들의 투혼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고랑포 일대와 강상에 기계화된 포병의 탄막사격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도하 준비를 완료한 중공군은 조수의 영향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진 23일 새벽 2시 30분을 전후하여 자지포 일대에서 2개 중대 규모로 도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운 이무생 일병은 1951년 4월 25일 파주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생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218 육)을 추서하고 유해(30묘역-판-259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ㄷ-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