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백(李武伯)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5608
  • 전몰일자 : 19501010

공훈사항

이무백 대위는 1907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대위는 예비역이었으나, 1949년 11월 17일 예현 제2차로 현역 대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무백 대위는 사단 중대장으로 부임하여 전투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던 중 6·25전쟁을 맞이하였다. 그는 임진강, 문산 일대에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으나 연대가 철수함에 따라 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면서 적을 저지하였다. 7월 4일 금곡리,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적의 남진을 저지하였으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대위는 사단 장병들과 함께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하였으나 집중적인 사격과 역습으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무백 대위는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가산(902m)은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여 전술적으로 중요하였으므로 쌍방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 대위의 진두지휘아래 사단 장병들은 충북 보은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하던 중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였던 이무백 대위는 1950년 10월 10일 구화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백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7판-3면-1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