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룡(李武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60952
  • 전몰일자 : 19511012

공훈사항

이무룡 이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무룡 이병은 국사봉 고지전에 투입되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제15연대는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미 제3사단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15연대는 우세한 포병 및 전차 화력지원에도 불구하고 북으로 진출할수록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과 중공군의 증원으로 163고지와 박달산 부근에서 공격이 좌절되었다. 다음날(10일) 오후 이 이병과 연대병력을 문산-서울 도로변의 명봉산-대자동-관산리 일대의 정찰기지에 배치되어 위력수색에 열중하였다.
제1사단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이 이병과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연대는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다. 그러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임진강 북쪽에서 강력한 정찰활동으로 군단의 좌측방을 엄호한 사단은 6월 3일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전곡-연천 도로를 따라 김화를 공격하였다.
7월 10일부터 시작된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이병과 연대병력은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오전 6시에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북한군의 저항을 크게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을 점령하였다. 이무룡 이병은 일부 병력과 정찰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1951년 10월 12일 임진강 부근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룡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8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ㅇ-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