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근(李戊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5701770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무근 상병은 서울시 서대문구 중림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4일 육군잠정포병사령부에 입대하여 제18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동 대대는 1949년 6월 10일 제7사단에 편성되었고, 동년 6월 25일 제5포병대대로 개칭되었다. 제7사단은 적 주공방향으로 판단된 의정부 축선의 양주군 적성에서 사직리까지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1949년 말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졌고, 이 상병과 사단 장병들은 진지공사와 장애물 설치, 교육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했고, 제5포병대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의정부에 위치했다. 사단의 예비였던 제3연대가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제2사단 제25연대가 사단에 예속되었으나, 주둔지 수용시설 문제로 아직 충남 온양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사단은 예비연대가 없는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사단 정면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상병이 소속된 제5포병대대는 즉각 1개 포대가 제1연대를, 대대(-)는 제9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이 상병은 전포병으로서 제9연대 정면의 적에 대해 쉴 새 없이 포탄을 쏘았다. 하지만 문제는 전차였다. 대전차 포탄이 없는 상태에서 적 전차를 파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적 전차의 전진을 막을 수가 없었다. 또한 포병대대의 지원을 받는 전방 제9연대의 진지가 초전에 적의 집중 포격으로 파괴됨에 따라 통신선이 절단되었고, 무전기는 고장이 잦았을 뿐만 아니라, 지형적 영향으로 불통되어 관측장교와 통신이 여의치 않았다. 모든 것이 불비한 여건 속에서도 이 상병은 내 손으로 조국을 지켜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연대 지원에 앞장섰다. 그는 분대원을 이끌고 포탄을 쏘며 분전하다가 개전 당일인 6월 25일 적 포격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근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4판-8면-2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7-ㄴ-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