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무경(李武卿)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무경 경사는 1923년 4월 11일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양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양주에서 전사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양주경찰서는 6월 25일 미명에 적의 공격을 받고 북방의 중요 거점으로 경계병력을 철수시켜 본서 병력과 더불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양주경찰서 정면에는 육군 제12연대 제9중대가 약 15km 정면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중대와 중대 사이에 경찰경계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적은 1개 대대병력으로 양주경찰서 정면과 좌우측에서 포위공격으로 압박해 왔다. 국군진지를 돌파한 적이 경찰진지로 밀려들자 양주경찰은 덕도리 고지에 배치된 2정의 기관총으로 적을 공격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러나 적이 후속 증원병력과 합세하여 재차 공격을 가하자 양주경찰은 덕정동으로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했다.
적은 2개 중대를 선봉으로 하여 남진을 계속했으며, 아군은 적을 저지하다가 전반적인 상황을 판단한 끝에 오후 6시에 진지를 포기하고 회천동으로 철수했다. 이날 전투에서 양주경찰은 적 30명을 사살하였다. 이 경사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무경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ㅈ-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