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몽조(이몽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302804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이몽조 이등중사는 1928년 7월 8일 경상남도 산청군 오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2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몽조 이등중사는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9월 6일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대구 간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였다.
이몽조 이등중사는 10월 9일 연대병력과 함께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조국 통일의 꿈을 안고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여 10월 19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1950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는 중과부적이었다. 파평산에서 철수한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이몽조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말 유엔군과 함께 반격을 시작하였다.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남쪽에 도달하였고, 16일에는 한강 남쪽으로 진출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서울을 목전에 두고 염창-김포 일대에 배치되어 경계와 잔적 소탕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어 3월 15일에는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을 탈환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이등중사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운 이몽조 이등중사는 1951년 3월 15일 김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몽조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4744 육)을 추서하고 위패번호(29판-1면-0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ㅈ-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