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몽용(李夢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381
  • 전몰일자 : 19521018

공훈사항

이몽용 일병은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2년 2월경에 입대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무렵, 제8사단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경기도 남양주군 퇴계원면에서 잠시 부대를 정비하였다. 제8사단은 1952년 3월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으로 이동했다. 제8사단은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제8사단은 지형 능선 및 수도고지 전투에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진지 강화와 수색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강상태는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의 수도고지 공격으로 종료되었다. 중공군은 5월 27일 야간을 기하여 549고지 및 647고지와 지형 능선에 대하여 공격을 감행했고, 5월 31일에는 수도고지에 대하여 1개 대대 병력으로 공격하였다.
제8사단은 1953년 6월 4일 난초 고지 전투를 실시하였다. 난초 고지는 피, 아 공방 작전의 요새지임을 한눈에 판단할 수 있어 전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능선이었다. 아군은 새벽 3시에 공격을 시작하여 단시간에 난초 고지를 완전 탈환했지만, 적군 4개 중대의 초월 역습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임에 따라 흩어져 철수하게 되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부터 6월 21일까지 금성 동남방지구 전투에 참여했으며, 당시 제8사단은 수도고지의 주저항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전투 초반 아군은 적군의 2개 연대 병력의 기습에 맞서 열세한 병력으로 방어하고자 했으나 결국 적의 공격으로 수도고지 주저항선이 침투당했다.
제8사단은 1952년 9월까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와 적정파악을 위한 소규모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2년 10월 18일 진지 순찰 도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몽용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5판-3면-2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3-ㅎ-09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