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몽룡(李夢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502484
  • 전몰일자 : 19510507

공훈사항

이몽룡 일등중사는 1928년 2월 28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몽룡 일등중사는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 일등중사를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몽룡 일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4일 오전 10시 30분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북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운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목표인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 일등중사와 연대는 11월 20일 태천-구성-삭주-신의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24일에는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이 일등중사는 연대병력과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16일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몽룡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정찰기지 확보는 물론 적 8사단을 격멸할 목적으로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미 제3사단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대는 적정이 경미하여 원당리 부근으로 순조롭게 진출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몽룡 일등중사는 1951년 5월 7일 고양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몽룡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ㅈ-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