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모열(이모열)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34903
  • 전몰일자 : 19530519

공훈사항

이모열 하사는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남산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18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제9사단은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 파괴에 성공했다.
제9사단은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에 성공했고,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전투를 마친 제9사단은 1952년 10월 26일에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뒤 1952년 11월 25일에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제9사단은 1953년에 접어들어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주저항선과 전초기지의 교통호를 물결형으로 보강하고 전 유선망을 교통호 지하에 매설했다.
이후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하계공세를 감행했다. 그 제1단계 공세의 일환은 1953년 5월 16일부터 이루어진 저격능선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진지를 지켜내고 적을 격퇴했으나, 1953년 5월 19일에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모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ㅈ-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