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모열(李模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077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모열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내당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실시하던 1950년 7월 말,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모열 일병이 소속된 미 제9연대는 당시 미 제24사단의 전투력을 보강하기 위해 8월 8일에 창녕에 도착하여 미 제24사단의 예비가 되었다. 당시 북한군은 창녕과 영산 지역을 돌파하여 미 제8군의 퇴로인 밀양-부산을 차단하려는 기도를 갖고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미 제9연대는 도착과 동시에 사단장 명에 의거 사단의 포병화력 지원 하에 8월 8일 오후 4시에 2개 대대를 투입하여 역습을 실시했다. 미 제9연대 제1대대가 클로버고지를, 제2대대가 오봉리 능선을 목표로 공격하여 8월 9일 새벽에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했다.
북한군 제4사단은 포기하지 않고 낙동강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격하였는데, 8월 18일에도 공격을 재개하여 영산 일대 고지군을 탈취했다. 이에 이모열 일병이 소속된 미 제9연대는 클로버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역습을 실시했다. 당시 미 제8군의 예비대인 국군 제17연대, 미 제2사단 제9연대, 힐 특수임무부대, 미 제1해병여단 등을 모두 투입하여 수차례에 걸친 공격작전 끝에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미 제24사단은 이 작전지역을 8월 20일에 미 본토에서 증원된 미 제2사단에게 인계하였고, 미 제9연대는 미 제2사단의 예속부대로 편성되었다.
미 제2사단은 현풍-창녕-영산 정면을 담당했고, 이모열 일병이 소속된 미 제9연대는 영산 정면을 담당했다. 북한군 제4사단은 9월 1일에 제9사단까지 증원받아 야음을 이용하여 낙동강을 도하하여 영산 정면을 기습적으로 탈취했다. 이에 미 제8군사령관은 큰 위협을 감지하고 마산 일대에서 전투 중이던 미 제1해병여단을 영산 지역으로 투입했다. 미 제2사단은 미 제1해병여단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을 낙동강 대안으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모열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모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6판-5면-1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ㅈ-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