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모룡(李母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8800615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모룡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모룡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7월 하순, 제7연대는 문경 일대와 점촌 –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격전을 벌이며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얼마 후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라는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당시 유엔군은 모든 부대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자 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리 부근에서 낙동강을 도하하여 공격하였고, 8월 10일 새벽 3시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도하하여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모룡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위천이라는 하천을 활용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유엔 공군의 근접항공 지원과 포병화력을 지원을 받아 강력히 대응했다. 이곳에서 연대 장병들은 8월 15일까지 치열한 전투로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러나 계속된 적의 공격으로 제6사단은 8월 17일에 매봉산-365고지로 철수하여 8월 21일까지 고지쟁탈전을 벌이다가 신녕으로 철수했다.
제7연대는 8월 25일에 신녕 북방 5km 지점에 위치한 화산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다. 화산은 신녕 일대를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먼저 중간목표인 228고지를 점령하고, 8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에 화산을 공격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철수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9월 3일에는 북한군의 공격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모룡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화산 – 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모룡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ㅈ-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