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희(李明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93607
  • 전몰일자 : 19530520

공훈사항

이명희 일등중사는 경기도 강화군 하첩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1년 3월 6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중공군의 제3, 4차 공세로 후퇴했던 유엔군이 공세로 전환하여 38도선 일대까지 진출했고, 제7사단은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이후 연대는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 때까지 중동부 축선의 인제-하진부리-평창 선을 오르내리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양구군 백석산과 그 남쪽의 917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백석산 탈취에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3차례에 걸친 공격을 격퇴하며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제3차 : 1952. 10. 13~14.)
사단은 1952년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하고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953년 2월 1일 다시 미 제25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일등중사는 1953년 5월 20일 적진 교란작전 간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전진하던 중 적 매복조의 기습사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희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4283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ㅋ-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