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희(이명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43853
  • 전몰일자 : 19510215

공훈사항

이명희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의 총공세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1월 8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정비대에 배치되어 장비를 정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유사시에는 전투지원도 병행하였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명희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두포리-금곡리-무건리 선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였다. 그들은 노고산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고자 새벽까지 고군분투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고양리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수리산 부근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하였으나 의외로 쉽게 무혈점령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이때부터 중공 제150사단과 주야로 수리산의 주인이 바뀌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게 되었다. 적의 계속되는 증원과 야간공격과 수류탄 공격으로 사단을 압박해오자 미 제27연대의 지원을 받아 수리산 일대의 일부 진지를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였다.
이명희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신정 공세 이후 계속된 철수 작전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지연전을 펼치며 고갈된 피해를 회복하고 부대정비를 거쳐 2월에 총공세로 전환하였다. 연대 장병들은 한강 남쪽으로 진출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서울을 목전에 두고 한강철교-영등포에 이르는 여의도에 배치되어 경계와 잔적 소탕 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 탈환 작전을 대비하여 소대-분대 규모의 장찰대를 강북으로 파견 적정을 탐색하도록 하였다. 이 일병은 정찰대에 합류하여 정찰 도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소총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이명희 일병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국군 부대에 적시적인 병기정비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2월 15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85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ㄱ-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