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희(李明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8102150
  • 전몰일자 : 19530228

공훈사항

이명희 이등상사는 1930년 7월 27일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0년 7월 31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이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은 낙동강방어선에서 9월 14일까지 격전 끝에 북한군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평안남도 백암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2월 15일 중공군 제203사단 예하 제607연대를 전초진지인 662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662고지를 지켜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현 선에서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 탐색과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작전 등의 작전을 지속 수행했다. 이 이등상사는 1953년 2월 28일 매복작전 중 적 침투부대와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희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2293 육)을 추서하고, 유해(장병1묘역-116판-638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ㅋ-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